2011년 4월 19일
하루 일과 (2011년 4월 19일)
이제는 옛일 같은 그 때의 4,19 그 날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피를 아끼지 않고
조국(코미디언의 이름이 아님)의 민주화를 위하여 흘리려고 앉은 자릴 털고 일어났던 날입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이 나라의 평화
그 평화 속의 평범한 하루를 정리하여 둡니다.
4시 기상
깨우는 이가 없어도 오래도록 어르신을 만나온 시간이기에 잠이 깨고
아직도 19살 같은 옆지기의 자는 볼에 내 볼을 부벼 주고 미련 없이 일어난다.
노권사님을 모시러 가기 까지는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컴을 살린다.
메일과 쪽지를 확인하며 일면식도 없는 그러나 반가운 이들의 소식을 읽는다.
카페를 물위의 소금쟁이처럼 옮겨 다니며 새 글을 만나고 안부를 묻는다.
차량을 시동하여 멀지 않은 길을 가서 권사님을 모셔오고
많지 않은 이들과 어르신을 뵙는다.
시간이 1시간여 경과 후 권사님을 모셔다 드리고
다시 컴 앞에 앉아 글로 만난 이들과의 만남을 이어간다.
7시 30분 학교 앞에 가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만날 시간이다.
아들과 옆지기가 즐거움을 동행을 한다.
옆지기와 나는 학교 정문 양쪽에서 아들은 후문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으며 인사한다.
“오늘도 행복해라”
“넌 공부 잘 할 수 있어”
“넌 세계적인 리더야”
먼저 인사하는 아이들도 있고,
대답으로 인사하는 아이들도 있고,
해를 넘겨 만나지만 여전히 무표정인 아이들도 있다.
먼저 인사하는 아이들을 통하여 내게 채워짐이 풍성하고,
무표정한 아이들을 보며 무엇이 저 아이들이 표정을 잊어버리고 살까?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난 세 살 때부터 표정을 잊어 버렸어”
8시 15분 학교 시작종이 울린다.
더 이상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나의 그 분을 만나는 그 때도 이처럼 종이 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으리라
30분을 헤어졌던 가족이 다시 만나 서로를 축복하며 귀가하여
9시에 아침을 먹는다.
아들은 식탁에 동물성 단백질은 기본예의라 한다.
다행히도 얼마 전에 마련한 사슴고기가 아직도 식탁의 한 부분을 채워 즐거워한다.
식사 후 노권사님의 부탁대로 등본을 발급 받으려고 동사무소에 들린다.
노권사님 이름이 비밀입니다. 어디 가서 말하지 마셔요 (ㅆ ㅏ ㅇ ㄴ ㅕ)
늦었지만 이름을 바꾸려고 지인들의 등본을 필요로 하며 그 나이에 수줍어하시며 수일전에 부탁하신 것을 이제 들어 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옆지기를 재촉하여 강화도로 들어간다.
지금 가도 약속 시간에 30분은 늦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분들이다.
한분은 파주에서 군부대 안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교회를 자비량으로 섬기는 또래 목사님이시고, 한분은 청춘을 강화도에서 헌신하신 선배 목사님이시다.
오늘 처음 만나는 분도 한분 있으시고 오랜 미국 생활을 하시고 미국에서 파송되어 한국교회를 섬기시는 한국인 선교사(목사) 친구도 만난다.
다들 부부가 모일 예정이다. 이유는 무공해 강화의 봄나물을 뜯으려는 모임이다.
강화의 진달래 축제 때문에 차량이 많아서 마음이 급한 길이 더 더디다
11시 35분 도착하니 2가정이 모여 있고 30여분이 지나니 2가정이 왔다.
한분은 목회를 중단하고 사업을 시작하여 아주 잘 나가는 사장님이시다.
이동하여 초라해 보이는 식당에 점심을 먹으려고 들렸다.
예약을 하셨다기에 무슨 이런 시골에서 예약까지?? 하며 들어가니 예약된 우리 자리만 비어 있고 빈자리가 없다.
음식도 모든 반찬들이 맛이 있다. 순두부찌개도 두부 맛이 살아 있으며 맛있다
하점면사무소 옆의 “은행나무” 라는 이름의 도로변의 초라한 시골집이다.
다시 처음 만난 곳으로 와서 남자들을 남겨두고 봄나물을 뜯으려고 들로 나간다.
난 이쁜 여자들만 들에 보내면 위험하니 보디가드로 따라 간다고 말하고 비닐봉지와 괭이를 챙겨 들고 들에 나서자마자 달래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들 칼만 챙겨 들었으니 달래는 괭이를 가진 내 몫이다.
여자들은 칼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계속 옮겨가고 난 주변을 살펴 달래를 캔다.
동산이랄 수도 없는 길이가 40 m 폭이 20m 정도이고 소나무 몇 그루, 아카시 몇 그루 바닥에는 묘소가 서너군데 그리고 찔래와 이런 저런 가시덩굴이 달래를 보호하고 있다. 부스럭 대며 돌아다니는 소리에 동산 옆집에서는 개들이 요란스레 짖어댄다.
꿩들이 놀라서 나는 소리에 나도 놀라서 허리를 펴니 어딘가 엎드려 있던 고라니가 달음질을 치는 모습이 보인다.
이 좁은 동산에 꿩과 고라니가 그것도 짖어대는 개들이 있는 곳에서 10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쉬다가 내 소리에 놀란 모양이다.
어딘가 숨어 있던 고라니처럼 내 속에 숨어 있던 욕심이 고라니의 뒤를 따른다.
딱히 잡을 방법이 있지도 않은데 이 좁은데서 제가 어디를 가랴 하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몇 번 엎드려 숨으려 하더니 결국은 동산을 벗어나 이웃해 있는 포도원으로 들어가 버린다.
포도원 곁에 가서 별 뾰족한 수도 없으며 기웃대보지만 이미 보이지 않는다.
괜히 허전하다.
딱히 어쩌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욕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옆지기와 다른 분들이 쑥과 봄나물을 제법 많이들 모았다.
다가가서 고라니 이야기를 하니 놀란다 저 작은 동산에 고라니가 있었다니 ??!!
달래를 자랑하고 다시 달래를 좀 더 캐려고 자리를 옮기다 보니 씀바귀에 쑥이 제법 자란 뚝이 있다.
일행을 불러 이곳으로 오래하여 씀바귀를 괭이로 한참을 캐어주고 강화를 벗어나는 시간이 퇴근시간대에 걸리면 도로에서 고생하니 서둘러 떠나자는 일행의 의견대로 마무리하고 차량이 주차되어 있고 남자들이 있는 곳으로 모여서 달래를 가정마다 나누어 주었다. 많이 고마워하며 달래들을 반긴다.
아마도 오늘 저녁에는 파주에서 달래간장이 계양에서 달래찌개가 식탁을 봄 냄새 나는 식탁으로 만들리라.
생각보다 쉽게 집에 도착하여 옥상의 벌을 살펴본다.
한통이 분봉을 준비하느라 왕대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알을 낳은지 5-6일 정도 된듯하다.
다음 주 중에 분봉이 나올 것이다.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추위를 느끼지만 벌들은 이미 봄이 와서 자리 잡은 것을 꽃들을 통하여 알고 있다.
이미 벌집의 한 부분은 꽃에서 나오는 꽃가루 덩어리들로 채워지고 있다.
바람이 심하여 다른 벌들은 열어 보지 않고 그냥 두고
마당의 화분들을 돌아보고 들어오니 그새 옆지기는 씀바귀를 데쳐서 효소와 양념으로 새콤달콤하게 만들어 놓고 달래로 된장찌개를 끓여서 식탁을 차리려 한다.
손을 씻고 가서 수저를 놓고 컵을 가져다 물을 떠서 자리를 잡는다.
별 것 아닌데 그렇게 좋아한다. 며칠째 새로 시작한 일이다.
하도 좋아하니 그만 둘 수가 없다.
어떤 때는 늦어서 이미 놓은 수저를 들어서 다시 놓으며 소리만 내기도 한다.
그래도 좋아 한다. 정말 좋아하는 것인지 좋아 하는척하여 날 부려 먹으려(?) 함인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는다.
식사는 봄나물 때문에 아니 옆지기의 수고 때문에 평소보다 과식이다.
년 중 겨우 몇 번 밖에 맛볼 기회가 없는 달래 찌개와 꽃대가 나오기 전의 씀바귀 무침은 흔하지 않은 별식이니 과식의 핑계가 충분하다.
식사후 별로 여유가 없이 다음세대(초등학교 아이들)들이 거실을 열고 들어온다
방학중에 기도 모임을 시작하였던 것이 이미 90일이 지나 수일이면 100일이 된다.
청소년들의 만남에도 100일은 의미를 주어 친구들이 100원씩 모아주어 맛있는 것을 먹게 한다는데 기도를 100일을 채워 가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제법 분위기 있는 곳에서 저녁식사를 계획중이다.
거실에서 아들이 키타를 치며 함께하는 소리가 닫은 문을 지나 정겹게 아름답게 들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들의 기도소리
“난 행복자이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 일찍 끝났다.
집에 가서 해야 할 숙제가 다른 때보다 많아서란다.
그런데도 거실에서 새우 어항을 드려다 보며 수다를 떤다.
재촉하여 집에 태워주고 이 글을 정리한다.
그러다 보니 9시 농직연 카페의 이뱅 시간도 잊고 있었다.
난 지난번 이밴트로 국수가 당첨 되었으니 다른 님들의 몫으로 두어도 되지!!!!
아마도 남은 시간은 카페를 기웃대다가 내일 일찍 어르신을 만나야 하니 잠자리로 GO GO 씽 만 남은 듯하다.
내일은 또 어떤 행복한 시간들이 날 만날까 기대가 된다.
---행복자 산향---